2013년 5월 18일 토요일

[야설 ] 강간범의 변명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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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 강간범의 변명 - 3부
아침에 일어난 나는 먼저 아랫배를 만져보았다.

‘......!’

어젯밤 그렇게 해대던 설사가 멎었고 배도 아프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또 다시 내시경을 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어젯밤 밥을 굶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고 나서 설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그야말로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것이다.

그 동안 잔병 한 번 걸리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아온 내게 어제와 같은 일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었고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병원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그토록 고생을 했는데 아무 성과없이 끝낸다면 더 억울한 일이 되겠기에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고시원을 나섰다.

병원에서 접수를 하자 간호사가 바로 내게 말을 한다.

“강철수씨. 대장내시경 맞죠?”

“예.”

“바로 하실 수 있으니까 어디 가지 마시고 이 앞에서 기다리세요.”

“예.”

소파에 앉아 10분 쯤 기다리니 내 이름을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철수씨!”

“예.”

“저 따라 오세요.”

어리고 귀엽게 생긴 간호사 하나가 내 앞으로 오더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여기 누우세요.”

겨우 한 사람이 누우면 다 찰 정도로 작은 베드를 가리키며 그녀가 말하자 나는 몸을 구겨 넣듯이 구부리며 베드 위에 누웠다.

“주사 하나 놓을 게요.”

말과 동시에 간호사가 내 팔에 주사를 꽂아 넣었다.

나는 아픔보다는 다가올 상황에 더 겁을 내며 눈을 찌푸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10분? 20분?

슬슬 지루해지려고 하는 그 찰나에 뭔가 부산한 소리가 귀에 들렸고 그와 동시에 그대로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의식이 돌아오면서 처음 느낀 것은 어지러움이었다.

하지만 현기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고 마치, 꿈 한 번 꾸지 않고 단잠을 자고 난 사람처럼 몸 상태는 쾌적했다.

“강철수씨.”

“예.”

입에서 말을 토해내는데 어지러움이 조금 더 심해지며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느낀다.

“내시경 다 끝났습니다. 이제 내려오셔도 돼요.”

아스라이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집중하려 애쓰며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끝났어요?”

“예.”

사무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누워있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 다 챙기시고 3내과 앞으로 가서 기다리세요.”

“예.”

신발을 신고 일어섰을 때 현기증이 또 다시 몰려왔지만 얼른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3내과 앞 의자에 앉아 있으니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강철수씨.”

‘어? 벌써 부르나?’

의자에 앉은 지 10분도 되지 않아 나를 부르자 나는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번에 왔을 때 30분 이상을 기다렸던 것에 비하면 무척 빨리 나를 부른 셈이다.

워낙 흔한 이름 탓에 혹시 동명이인이 있나,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간호사가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예, 하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3내과로 들어갔다.

“강철수씨?”

전에 나를 진찰했던 그 의사가 내 얼굴을 보며 묻는다.

“예.”

“강철수씨 맞습니까?”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확인하는 의사의 얼굴을 보고 나는 갑자기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뭔가 이상했다.

처음 나를 진료했을 때는 그저 사무적이고 딱딱한 얼굴이었는데 지금 나를 보는 그의 얼굴엔 뭐랄까, 자비심이랄까, 동정심이랄까, 하는 인간 특유의 감정들이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예. 강철수 맞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 약간 떨려나갔다.

“으음.”

내가 다시 한 번 이름을 확인해주자 의사는 나하고 눈을 맞추지 못하며 시선을 컴퓨터 모니터에만 두고 있었다.

나도 불안한 예감을 숨기지 못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의사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지 않자 의사가 할 수 없이 말을 꺼냈다.

“강철수씨. 보호자는 없나요?”

“없습니다. 저한테 말씀해 주시죠.”

될 수 있으면 평범한 어조로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은 무척 긴장 되었고 심장박동은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음.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안 좋습니다.”

짐작했던 의사의 말에 나는 억지로 웃음을 자아내며 물었다.

“어느 정돈가요? 설마 죽을 병은 아니겠죠?”

그러자 의사가 비로소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연히 죽을 병은 아닙니다.’ 이런 말을 기대했는데 의사는 말없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순간, 내 가슴은 미친 듯 뛰기 시작했고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앉아있기도 힘들 지경이 되고 말았다.

내가 얼굴을 굳히며 가만히 있자 의사가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어쩔 수가 없군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으니... 강철수씨. 내시경 결과 대장암인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쿠쿵-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손을 심장이 있는 부분에 대고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물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예. 젊은 분이어서 그런지 진행이 빨리 된 것 같아요.”

“그러면......”

“말기대장암입니다.”

멍한 상태로 내가 다시 의사에게 물었다.

“말기라면 어떻게 되나요? 수술해야 합니까?”

“음. 그게 수술이......”

잠시 망설이던 의사가 모니터를 내게로 돌리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 보이시죠? 이게 암덩어리입니다.”

의사가 가늘고 긴 지휘봉 같은 걸로 화면을 가리키는데 그곳엔 주름진 내장 가운데 벌겋고 노르스름한 것들이 자리잡고 있어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았다.

“여기 암덩어리가 항문하고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만약 수술을 한다면 인공항문을 달아야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이 암덩어리가 이미 직장 전체로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진행이 돼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늦은 상태라 수술을 한다 해도 생존확률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는 의사를 향해 내가 말했다.

“선생님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5프로 미만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고 그것도 높게 잡은 수치입니다. 더구나 수술을 하고 나면 인공항문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또 수술이란게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거라 몸이 더욱 약해져서 수술을 하지 않을 때보다 수명을 단축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절대로 수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의사에게 다시 물었다.

“인공항문이란게 뭡니까 선생님?”

“보통은 항문과 가깝게 암이 있는 경우 어쩔 수없이 하는 술식인데 이걸 하게 되면 항문이 모두 제거됩니다. 그렇게 되면 배변을 결정하는 항문이 없어지게 되니까 인공으로 항문을 형성해주어야 배변이 되겠지요. 그래서 보통 옆구리쪽에 인공으로 항문을 내주고 배변주머니를 차게 되죠. 그리고 몸에서 나오는 변은 모두 그곳으로 배출이 됩니다. 이것을 하게 되면 항상 대변주머니를 차고 다녀야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합니다. 더구나 그것을 평생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번거로움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겠죠. 하지만 아무리 번거롭더라도 생존률이 높다면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내 적지 않은 경험에 비춰볼 때 강철수씨는 수술을 한다면 인공항문보다 수술 후 후유증으로 더욱 고생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명도 더욱 단축할 가능성이 많구요.”

“수술을 하면 예상되는 수명과 수술을 하지 않고 그냥 살면 예상되는 수명은요.”

말을 하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떨리는 것이 멈췄고 전보다 침착한 어조로 내가 현실적인 것들을 물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4개월에서 6개월 정도?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수치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었는지도 봐야하고 만약 다른 곳에 전이가 되었다면 수명이 더 짧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악의 경우 2개월에서 4개월 정도가 될 수도 있어요.”

“수술을 한다면요?”

“수술을 하고 나서 후유증으로 사망할 경우라면 사실 단 1개월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다른 장기에 암세포가 퍼져있다면 더욱 빠를 거고, 그것보다 괴로운 것은 생의 남은 기간을 전부 병원에서 보내야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고생하고 돈만 들이다 가는 거죠. 그래서 수술을 권하지 않는 것입니다.”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6개월? 아니 최악의 경우 2개월이라......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어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과장님! 밖에 환자분들 많이 기다리십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와 의사에게 말했다.

눈을 떠 의사를 보니 그는 간호사를 향해 고개를 흔들며 자기가 부를 때까지 환자를 들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나를 배려한 것이지만 내 마음은 그런 배려조차 고맙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이 메말라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보니 한 동안 죽음 같은 정적이 실내에 깔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그런다고 병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이곳이 지겹도록 싫어져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자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나요? 약을 먹어야 한다든가, 아니면...”

그러자 의사가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 정도 상황이면 약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수명을 연장시키고 싶으면 본격적으로 검사를 받으면서 항암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강철수씨 지금 상태가 항암치료로 가능한 상태가 아니어서 그런 것도 오히려 고통만 안겨주고 나중에 괜히 했다는 후회로 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검사와 항암치료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맡기고 싶네요.”

“아까 선생님이 본인의 입장이라면, 하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 자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의사가 손으로 턱주변을 한 번 쓰다듬으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려운 문제네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경제적인 환경, 그리고 나이문제까지 다 다르니까요. 나라면 항암치료 받지 않고 그 동안 하고 싶어도 해보지 못했던 거 마음껏 하겠습니다. 물론 돈은 있으니까 검사 받고 항암치료 하는 게 큰 경제적인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검사와 치료에 투자해야할 남은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 땅에서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다면 검사와 항암치료 받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일이 되겠죠.”

“검사하고 치료하는데 돈이 많이 드나요?”

“물론이죠.”

돈이 많이 든다는 그 말에 나는 이미 치료받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자꾸 드는 이 아쉬움은 뭐란 말인가?

“선생님. 그렇게 내 상태가 안 좋은 가요? 정말 살 수 없는 건가요?”

이 말을 하면서 울컥, 감정이 복받쳐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흑흑-

“강철수씨.”

의사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따뜻하게 나를 바라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한 동안 눈물을 쏟아내던 내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쳐다보자 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미안합니다.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이렇게 너무 확실하고 결정적인 것들이 눈앞에 있으니 오진이라고 해드릴 수도 없고. 정말 미안합니다.”

의사가 고개까지 숙이면서 말을 하자 나는 더 이상 여지가 없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자 의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와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것 실컷 해 보세요. 그리고 검사나 치료 받고 싶으면 또 나오시고 통증이 심해지면 진통제 처방해 드릴 테니 나오시구요.”

“예. 고맙습니다.”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3내과를 나온 나는 접수대에서 계산을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문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차디 찬 바람이 휘잉, 하고 불어와 옷속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뼈가 저리게 한기를 느끼며 다리마저 풀리자 나는 그 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참을 주저앉아 있으니 사람들이 오며가며 힐끗 쳐다본다.

허우대는 멀쩡한 사내가 술 취한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그때 멍한 정신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니 인혜였다.

“응.”

수화기 저편에서 인혜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검사 아직 안 끝났어?”

“다 끝났어.”

“뭐래?”

“그냥......”

나는 인혜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별 거 아니지?”

“응.”

“곧 들어오겠네?”

“응.”

“그런데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참. 밥을 못 먹었겠구나? 빨리 와서 같이 점심 먹자.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오늘따라 웬일인지 인혜의 목소리가 살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엔 더욱 찬 바람만 몰아치고 있다.

“알았어. 곧 들어갈게.”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닫는데 손에 힘이 빠져 그만 휴대폰을 놓쳐버렸다.

빠직-

휴대폰이 길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바닥에 널브러진 잔해들을 보자 내 몸도 머지않아 저 휴대폰처럼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거라는 생각에 가슴속이 먹먹할 정도로 시리고 아파왔다.

나도 모르게 몸을 구부려 조각난 휴대폰들을 모아 원래의 형태대로 맞춰 본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면 내 몸에 있는 몹쓸 병이 낫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청에 돌아오자 인혜가 나에게 점심을 샀다.

그녀와 데이트란걸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자기 돈을 내 점심을 사주는 것이라 평소라면 감지덕지 얻어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왜 그래? 사형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힘이 하나도 없네.”

음식을 앞에 두고 인혜가 나에게 말하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형선고라. 그렇다.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아니, 사형선고보다 더욱 지독한 것이다.

수십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도 사형언도를 받고 형을 집행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터였다.

한데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나는 힘없이 인혜에게 웃어주고 젓가락을 들어 밥을 한 입 넣었다.

어제 저녁부터 굶은 위장에 밥이 들어가자 어서 더 달라고 뱃속이 요동쳤다.

‘시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지? 우선 먹고 보자.’

마음을 바꾼 나는 입속에 있는 밥을 꿀꺽 삼키고 앞에 놓인 돈가스를 나이프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커다란 돈가스 덩어리를 여덟 등분으로 나눈 뒤 나이프를 놓고 포크로 찍어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게걸스럽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인혜가 웃는다.

“이제 철수씨 답네. 내 것도 더 먹어.”

인혜가 자기 몫을 조금 더 덜어주자 나는 사양하지 않고 다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나는 인혜에게 말했다.

“인혜야. 커피도 한 잔 빼와라.”

그녀가 내 얼굴을 쳐다본다.

평소엔 자신이 밥을 다 먹으면 그 즉시 내가 커피를 대령해왔으니 옛날과 반대되는 지금의 내 행동은 많이 낯설 것이다.

하지만 인혜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를 둘 빼와 나와 자신의 자리 앞에 놓았다.

후루룩-

나는 입김을 불어가며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오늘따라 커피가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이렇게 맛이 있는 걸 앞으로 6개월 후면 못 마신다니......

그 생각을 하자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얼른 심호흡을 하며 인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역시 다시 봐도 못생긴 얼굴이다.

내가 이 쭉 째진 눈과 낮은 코에 얼마나 적응하려 애써왔는가.

이제야 겨우 적응을 마치고 얼굴주인의 마음까지 얻으려고 하는 시점에서 이런 변고를 당하다니.

“철수씨. 병원에서 무슨 안 좋은 말 들었어?”

내가 커피를 다 마시자 인혜가 그제야 내게 묻는다.

“왜?”

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니. 어쩐지 철수씨 얼굴에 힘이 없는 것도 그렇고, 행동도 전과 많이 달라보여서.”

‘그래. 머리가 영리하니 눈치도 빠르구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인혜에게 사실대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아니. 크게 안 좋은 것은 아니고 약간.”

내가 얼버무리자 인혜가 파고든다.

“약간이면 안 좋긴 하잖아? 장내시경 했다면서, 장염이래?”

“응. 잘 아네. 장염 맞아.”

나는 더 이상 설명하기 싫어 그녀가 넘겨짚은 대로 말해버렸다.

“장염이면 나도 앓아봐서 아는데 음식 조심해야해. 잘 못하면 고질병으로 되는 수도 있으니까.”

인혜는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더 이상 듣기 싫었다.

이젠 나와 아무런 상관 없는 여자가 돼버렸으니까 말이다.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여자는 내가 몸이 건강했을 때 앞날을 설계하며 꿈꾸던 여자이지, 몸에 병이 들어 시한부생명을 살게 된 지금의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저기 인혜야. 다 먹었으면 들어가자. 내가 오늘 컨디션이 별로라서.”

“응. 그래.”

계산을 끝낸 인혜가 이제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는데 평상시라면 크게 웃음이라도 터뜨릴 일이었다.

평소에 항상 내가 그녀의 눈치를 봐 왔는데 지금 서로의 모습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시청에 돌아온 나는 도저히 일할 기분이 나질 않아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조퇴를 했다.



고시원에 돌아와서 이불을 깔고 누웠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안정이 되질 않아 몇 번을 일어났다 누웠다, 를 반복했다.

그러다 도저히 술이라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참. 휴대폰을 깨뜨려먹었지.’

휴대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먼저 휴대폰을 파는 가게로 갔다.

“휴대폰을 떨어뜨려서 하나 새로 하려는 데요.”

“네 손님. 저희 매장에 좋은 휴대폰 많습니다.”

젊고 잘생긴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건네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공짜로 주는 휴대폰 없나요?”

“음. 그 전에 무슨 통신사를 이용하셨나요?”

“oo통신사요.”

“그러면 **통신사로 바꾸세요. 50만원짜리 휴대폰을 무료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요? 다른 제약은 없나요?”

“예. 처음 두 달만 약정비로 1만원씩 매월 내시면 됩니다. 그밖에 다른 제약은 없으니까 안심하시고 쓰셔도 됩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죠. 참. 그 전에 쓰던 번호는 그대로 쓸 수 있나요?”

“그것은 확인해 봐야 됩니다. 전에 쓰시던 번호를 불러주시겠습니까?”

내가 번호를 불러주자 청년이 확인해 보고 내게 말했다.

“어쩌죠? 전에 쓰시던 번호는 사용할 수가 없겠는 데요. 대신 월 1만원씩 내시면 전에 사용했던 번호로 누가 전화를 걸어도 새 번호로 자동 연결이 가능합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 자동연결을 거부했다.

한 달에 1만원이란 돈이 아까워서인데 죽음을 앞두고서도 거지근성을 버리지 못한 내가 씁쓸했지만 이미 몸에 굳어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그리고 이전 휴대폰 번호에 미련 같은 것도 없다.

이제껏 고아로 살아와 특별하게 친분을 맺은 사람도 없었고, 아니, 이렇게 죽음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아는 사람들과는 오히려 연락을 끊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번호가 바뀐 게 차라리 잘 된 것이다.

새 휴대폰을 얻으면 전에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분이 새로워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 휴대폰 가게를 나서는 내 마음은 걸음을 떼면 뗄수록 오히려 더욱 무거워져만 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7시다.

식사할 때가 되었지만 밥보다는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동안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사방이 술파는 곳이다.

횟집을 갈 까, 고깃집을 갈까 망설이다 결국 돈이 아까워 실내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포장마차여서 그런지 아직 실내에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삼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줌마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한 눈에 쓰윽 둘러봐도 넓지 않은 공간이다. 손님이 없어도 썰렁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나는 빈 자리 하나를 잡고 앉았다.

“뭐 드실 래요?”

여자가 묻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를 보다 내가 물었다.

“오삼불고기 맛있어요?”

“어머. 내가 제일 잘하는 건데 드셔보세요. 여기 오시는 손님들 중에서 가장 많이 찾는 메뉴예요.”

“그럼 그걸로 하나 주시고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자가 물러가자 나는 습관적으로 돈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오삼불고기가 만오천원에 소주가 삼천원이면 합이 만팔천원...’

계산을 하다 순간, 내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이제 곧 죽을 병에 걸렸으면서도 이렇게 돈에 미련을 못 버리는 내가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철수야. 이 놈아. 이 찌질한 놈아. 넌 왜 그렇게 사냐?”

작은 목소리로 스스로를 힐책하며 다시는 돈 문제로 머리 쓰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있는데 여자가 소주 한 병과 기본 안주를 놓고 갔다.

마개를 열고 소주를 따라 먼저 한 잔을 원샷으로 마셨다.

‘......!’

빈 속에 식도를 타고 흐르는 소주의 느낌이 무척이나 좋았다.

오이를 하나 손으로 집어 된장에 찍고 씹어 먹었다.

아삭-

이렇게 음식이 맛이 있는데 어떻게 말기암일 수가 있는 걸까?

순간, 의문이 들었다.

말기암이라면 최소한 입맛이 없다거나 몸에 힘이 떨어진다거나, 감기에 잘 걸린다거나, 등등 이상징후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항문 쪽에 통증을 느끼는 거 말고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한 말을 떠올렸다.

건강이란 절대로 자신할 수 없는 것.

허약체질에 병을 달고 살아도 80, 90까지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병원 한 번 가보지 않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말.

내 경우는 후자인 셈인가?

“후후. 그야말로 한 방에 훅, 가는 인생이군.”

자조섞인 웃음을 짓다 나는 다시 소주를 한 잔 따랐다.

이번엔 한 잔을 아주 천천히 나눠 마시며 지나온 일들을 생각했다.

나이 스물여섯이면 많이 살았다고 할 것 없는 인생이다.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는 고아원에서 고생하고 바로 군대에 가서는 특전대로 빠져 좆뺑이 치며 고생했다.

그리고 제대하고 나서부터 정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시청에서 근무했던 몇 년도 온갖 잡일에, 국장 시다바리 역할을 하느라 지금까지 시간을 다 보냈으니 정말로 좆같은 26년이 아닌가?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좋았던 경험을 대보라면 재대하고 사창가에서 돈으로 창녀를 산 일과 엊그제 인혜와 고시원에서 있었던 일 정도랄까?

사춘기를 맞으면서부터 끊임없이 솟아나는 여자에 대한 욕구를 분출했던 것이 딱 그 두 번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두 번 모두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경험이었다.

특히 창녀와의 경험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딴에는 큰 맘 먹고 거금을 들여 간 곳이었는데 내 물건을 보던 창녀가 온갖 짜증을 다 부렸던 것이다.

‘아저씨 물건이 너무 커서 아프다느니, 그렇게 큰 거 받으면 보지 다 찢어지고 앞으로 장사 힘들다느니, 그러면서 팁을 요구하는데 내가 끝까지 팁을 주지 않자 끝날 때까지 계속 씨부렁거리며 불평을 그치지 않았다.

정말 재수 없는 첫경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인혜와의 경험은 좋았다.

비록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인혜의 입속에서 사정했던 경험은 아주 짜릿하고 황홀했던 것이다.

인혜의 얼굴을 떠올리니 씁쓸한 것이 치밀어 오른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던 여자라 이젠 그녀와 얼굴 마주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남은 술잔을 한 입에 털어놓으며 생각했다.

내 인생을 이대로 마감해도 좋은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억울했다.

내가 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단 말인가?

문득 통장 잔고에 생각이 미쳤다.

이천육백칠십만원의 잔고.

내가 고작 삼천만원도 못되는 돈을 모으려고 이 젊은 날을 고생하며 흘려보냈던가.

“씨팔. 니기미.”

한 동안 쓰지 않았던 쌍욕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대상도 없는 분노가 끓어올라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때 마침 술집주인이 주문했던 오삼불고기를 들고 내 앞으로 왔다.

“아유. 그렇게 빈속에 마시면 금방 취해요. 여기 안주 왔으니까 안주에다 들어요.”

“예.”

나는 여자에게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어주고 돼지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음. 맛 있네요.”

내가 칭찬하자 여자가 웃는데 입가에 주름이 깊게 지는 걸로 보아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뭐 부족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손님이 나뿐이어서 그런지 여자가 유난히 친절하게 구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아 나는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

“아주머니. 한 잔 하실 래요?”

“호호. 장사 끝날 때면 하겠는데 이제 시작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여자가 내 앞에 앉아 잔을 내민다.

내가 술을 따르자 여자가 나를 보며 웃었다.

“손님 받아야 하니까 한 잔만 마실 게요.”

그러면서 한 입에 소주를 털어 넣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다.

술을 즐겨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술이 당긴다.

“어머. 잔이 비었네. 한 잔 드릴 게요.”

여자가 내 빈 잔에 술을 채우는데 문을 열고 남자 손님 둘이 들어왔다.

그러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어. 따뜻하다. 안녕하세요.”

“어머. 또 오셨네요?”

내가 힐끗 쳐다보니 사십 대 초반의 두 남자는 주인여자와 안면이 있는 듯,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니 제집 안방처럼 자연스럽게 빈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러자 여자는 그때부터 두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 소주만 마셨다.

나는 뜨내기요 저쪽은 단골손님이니 여자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잔, 두잔, 하던 것이 어느새 한 병을 비웠고 한 병을 마시고 나니 이제 얼큰하게 취기가 느껴지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주 한 병을 더 비우자 이젠 말기암이란 것도 그다지 나를 두렵게 하지 않았다.

뭐, 인생 어차피 한 번 왔다가 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가 아닌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니 조금 일찍 간다고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것저것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은데 그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소주 세 병째를 시킬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시간을 보니 저녁 9시.

전에는 술을 이 정도까지 마셔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술을 마시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돈때문이었는데 이제껏 단 한 번도 내 돈을 들여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고 술을 마실 때면 공식적인 회식자리나 다른 사람에게 술을 얻어먹을 때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취할 때까지 마셔본 적도 없고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도 하고 여차하면 죽을 때까지 마셔보는 거지 뭐.

“이제부터 다르게 살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다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그때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별 생각 없이 있다 그들이 내 옆자리에 앉자 나는 무심결에 그들을 보았다.

한 명은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십 대 후반의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런데 둘 다 외모가 괜찮았다.

남자도 훤칠한 키에 잘생긴 편이었고 여자 또한 하얀 피부에 도시적인 얼굴이 꽤나 호감을 주는 상이었다.

남자가 나와 가까운 쪽의 의자를 빼주자 그곳에 여자가 먼저 앉았다.

순간 콧속으로 화장품 냄새가 확 침범해 들어오면서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서 뭔가 끓어올랐다.

“호호. 김대리님. 여기 어때요?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곳으로 가도 되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하는데 말끝에 애교가 뚝뚝 묻어나왔다.

“하하. 나는 좋아요. 어차피 간단하게 한 잔 마시기로 한 거니까 이런 데가 좋지. 그런데 윤정씨는 괜찮아요?”

“저도 이런 분위기 좋아해요.”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소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를 시킨 뒤 얘기를 나눴다.

자리가 붙어 있는 관계로 나는 싫어도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용으로 봐서 둘은 직장 동료로 남자가 여자보자 직급이 조금 위인 것 같았다.

아마도 회사에서 회식을 마치고 여자가 집에 가는 것을 남자가 바래다주는 것 같았다.

이 포장마차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들른 것이고 두 사람의 관계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걸로 봐서 이제 막 사귀려고 하는 단계인 것 같았다.

병이 거의 다 비워질 무렵, 옆자리의 사내가 일어나 주인여자에게 물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딥니까?”

“어쩌나? 화장실 가려면 빙 돌아가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여기 키를 가지고 건물을 한 바퀴 도셔야 해요.”

“예.”

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옆에 앉은 여자가 휴대폰을 열고 어디론가 통화를 한다.

“오빠. 나야... 응? 아. 회식이 아직 안 끝나서 전화 못 받았지. 오빠.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여자의 통화내용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라는 건가?’

지금 여자가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진짜 여자의 애인인 것 같았다.

그리고 화장실에 간 남자는 아마도 조건이 좋아 여자가 잡아두려는 모양이다.

“아이. 알았어. 곧 집에 들어 갈 거야. 집에 가서 통화할게. 응.”

간드러진 목소리로 전화를 끝내고 여자가 또 어디론가 통화를 한다.

“응. 내가 통화도 하지 말고 문자도 보내지 말라고 했지. 왜 그렇게 날 괴롭히는 거야. 끝났으면 쿨하게 헤어지자고.”

아마도 이 사람은 전에 사귀던 사람인데 끝내고서도 여자에게 미련을 못 버리고 엉기는 사람인 모양이다.

‘참. 예쁘면 인물 값 한다더니......’

내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데 화장실 갔던 남자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여자는 얼른 휴대폰을 끄고 태연하게 앉아 남자를 맞았다.

“호호. 춥죠?”

여자가 뼈라도 녹일 정도로 상냥하게 대하자 남자도 기분이 좋은 듯 활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오늘 날씨 아주 좋은데요. 바람도 안 불고 봄 날씨 같아요.”

“그래요? 다행이네.”

“왜요?”

“김대리님 이제 집에 가셔야 하는데, 따뜻하게 가시라고요.”

“하하. 윤정씨는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도 곱네요.”

옆에서 객관적으로 듣고 보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엊그제 내가 인혜에게 아부하며 했던 말들은 이보다 훨씬 더했다는 것을 이내 깨닫고 속으로 쓴 웃음만 지었다.

“너무 늦었는데 김대리님 집에 들어가셔야죠.”

여자가 일어날 의사를 밝히자 남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나야 괜찮지만 윤정씨 늦게 들어가면 부모님께 혼난다고 했으니까 이만 보내드려야겠죠?”

남자가 매너 있게 대꾸하며 계산을 했다.

“아주머니. 잘 먹었습니다.”“다음에 또 올 게요.”

두 사람은 주인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주인여자가 두 사람을 배웅하는 순간, 나는 수저통에서 젓가락 하나를 몰래 빼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여자에게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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